플라톤의 <국가>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단어는 ‘내려가다(카테벤)’이다. 이 짧은 낱말에서 ‘이상의 세계’에서 ‘현실의 세계’로 하강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떠올린 이도 있고, 아테네 정치의 타락을 문학적으로 빗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무엇보다 신과 영웅이 중심인 신화적(뮈토스·mythos) 세계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개척한 냉철한 논리(로고스)의 세상으로 바뀌는 순간을 상징한다는 해석이 눈길을 끈다.
사회 발전에 발맞춰 논리적인 사고방식이 힘을 키웠다. 무기를 만들고, 조직을 갖추고, 주변 환경을 통제하는 데 ‘로고스적 사고’는 필수였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의 옛이야기는 허무맹랑한 것으로 배척됐다. 설 자리가 좁아진 신화는 과학으로 설명하기 힘든 일이 생길 때나 간헐적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지난 7일 앤스로픽이 해킹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인공지능(AI) 신모델 ‘미소스(mythos)’를 공개한 이후 세계적으로 보안 시스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신화’라는 이름에 걸맞게 미소스는 27년간 찾지 못한 보안 프로그램 버그, 500만 회 이상 검사를 실행하고도 놓친 안전 취약점 등을 단박에 발견했다. 이런 해킹 능력이 악용되면 은행 병원 발전소 등 주요 인프라 운영이 멈출 수 있고, 방송이나 군에 대규모 사이버 공격이 가해질 수 있다.
미소스가 인류를 위협할 ‘새로운 핵무기’로 거론되며 각국 정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공개 직후 미국 백악관에선 수지 와일스 비서실장,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등이 참석한 비상대책회의가 열렸고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6대 은행 최고경영자(CEO)를 긴급 소집했다. 국내에서도 지난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금융위원회가 부랴부랴 긴급 보안점검회의를 했다.
미소스 공포가 커진 데에는 AI의 위력을 인간이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 한몫했다. 하지만 막강한 성능의 해킹머신도 수학과 컴퓨팅이 결합한 프로그램일 뿐이다. 인류는 지금껏 과학의 힘으로 미지의 공포를 극복해왔다. 기술도 결국 사람이 하기 나름이다. ‘AI 신화’에 주눅 들지 말고 ‘기술 신화’를 써나가야 한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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