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관계가 껄끄러운 지도자 중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빼놓을 수 없다. 둘은 만날 때마다 입을 악다물고 관절이 하얘질 정도로 팔씨름 악수를 하며 힘겨루기 한다. 트럼프가 SNS에 “의도적이든 아니든 에마뉘엘은 항상 틀린다”고 저격하면 마크롱은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라며 뭉개는 식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트럼프 사이는 정반대다. 스타머가 노동당 대표로 트럼프와 정치적 성향이 상반됨에도 둘은 각별한 관계다. 영국이 유럽연합(EU, 15%)보다 낮은 10%의 상호관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었던 데도 정상 간 우애가 한몫했다. 아베 전 일본 총리처럼 스타머의 몸 낮추기가 트럼프의 환심을 샀다. 스타머는 트럼프가 서류 꾸러미를 바닥에 떨어뜨리면 아랫사람처럼 급히 허리를 굽혀 주워줄 정도다.
스타머-트럼프 이상으로 모든 것이 다른 조란 맘다니 신임 뉴욕시장과 트럼프 간 회동이 화제다. 34세 최연소 뉴욕시장과 79세 최고령 미국 대통령, 자칭 사회주의자와 뼛속까지 자본주의자, 서로를 공산주의자와 파시스트라며 포효하던 둘이 정작 만나서는 세상없는 브로맨스를 보였다. 맘다니는 트럼프에게 ‘Sir’로 극존칭을 쓰고, 사진을 찍을 때도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 한 발 뒤로 물러서 있는 등 시종일관 존중의 자세를 표했다. 트럼프 역시 팔꿈치로 툭툭 치며 친근감을 드러냈다. 둘이 서로에게 한 표현들은 덕담 일색이었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고 하듯, 둘의 뜻밖의 밀월 관계에는 정치 이론 하나가 작용하고 있다. 극좌와 극우가 서로 극단적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상은 밀접하게 유사하다는 말발굽(horseshoe)이론이다. 둘은 회동 후 기자회견에서 이민,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문제 등 정치 이슈에 대해서는 철저히 답을 회피하면서 공통의 관심사에만 집중했다. ‘생활비’와 ‘부담 가능성’(affordability), 이 두 단어만 수십 번 되풀이했다. 현재 미국인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이며, 내년 중간선거를 어떤 화두로 치를지 단박에 드러낸 자리였다. 물론 둘의 브로맨스가 오래 유지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말이다.
윤성민 수석논설위원 smy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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