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서학개미 탓하는 외환당국…구조 개혁부터 추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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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서학개미 탓하는 외환당국…구조 개혁부터 추진해야

“최근 거주자들의 해외 투자 확대 등으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470원을 넘어서며 외환시장 불확실성이 커졌다.”(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지난 14일 시장점검회의)

환율 급등세가 멈추지 않자 외환당국이 ‘서학개미’를 도마에 올릴 태세다. 서학개미가 엔비디아, 테슬라 등 미국 주식을 사기 위해 원화를 달러로 환전하면서 원·달러 환율을 밀어 올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외신 인터뷰에서 “최근 환율 움직임은 대부분 국내 거주자의 해외 투자에 좌우됐다”고 설명했다. 사석에선 “서학개미가 외환시장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 당국자도 종종 볼 수 있다.

한은에 따르면 서학개미와 기관투자가 등 국내 거주자의 올해 3분기 말 해외 증권 투자 잔액은 지난 2분기 말에 비해 890억달러 불어난 1조2140억달러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과거 이런 서학개미들이 해외에 보유한 달러 자산은 ‘외환시장의 안전판’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서학개미들이 환율 변동성을 높이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투자자들은 환차익을 노리기 위해 미국 주식을 팔아 원화로 환전하는데, 최근 들어선 되레 비싸진 달러로 미국 주식을 더 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서학개미의 이런 움직임을 취약해진 한국 경제 펀더멘털 영향 탓이라고 진단한다. 국장(國場)보다 미장(美場)을 찾는 투자자가 늘어난 근본적인 이유는 성장률 둔화에 따른 투자 수익률과 원화 가치 동반 하락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런 인과관계를 보다 직접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지난 4일 발표된 ‘해외 투자 증가의 거시경제적 배경과 함의’ 보고서는 “2000년대 이후 총요소생산성(TFP)이 빠르게 둔화하며 국내 자산의 투자 수익률이 떨어졌다”며 “이 시기부터 서학개미 열풍이 본격화했고 기업의 해외 설비 투자도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실효성 있는 정부 대책은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분석하는 데서 시작된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외환시장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환율 안정을 위한 정부 대책을 묻는 질문에 ‘규제 완화와 고용 유연성 확대를 통한 기업 투자 유도’를 꼽은 응답(48%)이 가장 많았다. ‘확장 재정 속도 조절’(35.1%) ‘잠재성장률 반등 노력’(33.0%) 등 구조 개혁을 말하는 의견이 뒤를 이었다.

외환당국이 자칫 이런 구조적 해법에 집중하기보다 서학개미를 탓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알려주는 외환시장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중장기 처방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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