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초선이 아니라 재선이 주축이지?” 3일 비상계엄 1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이 모여 1년 전 비상계엄에 대해 공개 사과하는 장면을 본 한 당직자가 이렇게 말했다. 이날 동료 의원들에게 사과하자고 제안하고, 이름을 올릴 의원을 모으는 역할을 주도한 것은 재선 의원들이었다. 평소 당이 어려우면 초선 중심으로 뭉쳐 당의 쇄신을 요구해오던 것과는 달랐다.
계엄 사과의 초선 의원 참여도 저조했다. 44명의 국민의힘 초선 의원 중 공개 사과에 참여한 이는 12명뿐이었다. 초선 의원 3명은 개인 SNS 등을 통해 사과문을 올렸다. 나머지 29명은 입을 닫았다. 사과한 비율이 전체의 절반도 안 된 셈이다. 반면 재선 의원은 16명 가운데 9명이 사과 의사를 밝혔다. 초선보다 비율이 높다.
사과에 참여하지 않은 초선 의원들에게 이유를 묻자 “그렇게 목소리 내면 배신자 된다”, “지방선거 참패하면 당도 알아서 바뀔 텐데 굳이 먼저 나설 필요가 뭐가 있나”라는 답이 돌아왔다. “마음 같아선 사과하고 싶은데, 지역구 주민들 눈치가 보인다”는 속내를 드러낸 영남 지역 초선 의원도 있었다.
계엄 사과에 초선들이 대거 빠진 현실에 대해 한 재선 의원은 “계파 갈등과 공천 학살 등을 겪으면서 초선들이 바람 방향대로 드러눕는 게 관행이 된 것 같다”고 한탄했다. 자기 목소리를 내다가 공천에서 탈락하는 사례를 보다 보니 몸을 사리는 문화가 생겼다는 의미다. 일부 초선 의원은 “일단 살아남아야 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이 현역이 아니라 신인을 뽑은 덴 이유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새로운 정치를 보고 싶은 바람이 있기 때문에 정치력이 검증되지 않은 신인에게 국회의원직을 맡겼다는 의미다. 또 그런 초선들이 보수정당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2010년 6월 김성식·정태근 등 한나라당 초선 소장파 의원들이 당시 이명박 청와대와 당 지도부를 공개 저격한 게 대표적이다. 당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첫 입장문이 나온 지 하루 만에 초선 89명 중 48명이 서명해 결국 청와대도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16대 국회에서는 초선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 이끈 ‘미래연대’가, 18대 국회에선 ‘민본21’이라는 모임이 있었다. “초선이 뭉치면 상대 당의 공세보다 더 무섭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영국 보수당에는 ‘1922 위원회’라는 모임이 있다. 1922년 당선된 보수당 비주류 초선 의원들이 지도부의 잘못된 결정을 비판하면서 시작된 모임인데, 지금은 총리를 끌어낼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췄다. 당장 국민의힘에 이런 위원회가 만들어지긴 불가능한 게 현실이다. 다만 지금의 초선들이 16~18대 초선 선배들의 모습이라도 배우면 어떨까.

1 week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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