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덕연 일당의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항소심 판결이 지난 25일 내려졌다. 국내 증시를 뒤흔든 사건이었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엄벌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연일 “주가조작은 패가망신”을 외쳐왔지만, 정작 법정에서는 허술한 규정의 민낯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라씨는 앞서 투자자 1000여 명으로부터 모은 자금으로 5년간 8개 종목 주가를 인위적으로 띄웠다. 고가·허수 매수, 물량 소진 등의 방식으로 2조원 규모 거래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이 얻은 부당이득을 7300억원 이상으로 추산했다. 1심 재판부는 라씨에게 징역 25년과 1944억원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크게 달랐다. 라씨의 형량은 징역 8년으로 대폭 줄었고, 두 명의 핵심 측근은 실형 대신 집행유예로 감형받았다. 추징금도 약 130억원 축소됐다.
처벌이 약해진 가장 큰 이유는 어이없게도 이들이 자본시장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주가조작 수단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라씨 등은 장외파생상품인 차액결제거래(CFD)를 통해 레버리지(차입)를 원금의 최대 2.5배까지 끌어다 주가 조작에 썼다. 그런데 현행 자본시장법은 주가조작의 행위 대상을 ‘상장증권 또는 장내파생상품’으로 한정하고 있다. CFD 등 장외파생상품을 통한 주가조작은 유죄로 볼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이 단순한 이유로 1심에서 인정된 조작 행위 상당수가 2심에서 부정됐다. 1심에서 3만여 회, 3037만 주로 봤던 ‘이익액 불상 시세조종’ 범위는 2심에선 약 1만 회, 1071만 주로 확 쪼그라들었다. 부당이득 산정 기준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금융당국 등은 2023년 말 ‘시세조종을 통한 총수입에서 총비용을 뺀다’는 큰 틀만 정해놓았다. 결국 법원은 “이익액을 특정할 수 없다”며 ‘이익액이 50억원 이상인 시세조종’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 내용이 알려지자 일부 투자자는 “이게 국장(국내 증시)의 현실”이라며 허탈한 심정을 표시했다. 주가조작은 단순히 ‘부정한 행위로 돈을 벌었다’는 문제가 아니다. 라씨 일당의 주가조작 대상이었던 8개 종목은 2023년 4월 말 폭락하며 시가총액이 8조1669억원 증발했다. 일부 종목은 4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 가격제한폭 확대 도입 사상 처음이었다. 자본시장 근간인 신뢰를 무너뜨리는 사건이었다.
규제의 빈틈을 막지 않으면 한탕주의를 막을 수 없다. ‘작전 세력’ 핵심 인물이 약한 처벌을 받은 뒤 재범을 저지른 사례도 부지기수다. ‘제2의 라덕연’이 나올 수 있는 구조를 방치하면 정부가 ‘코스피 5000 시대’를 외친들 구호에 그칠 공산이 크다.

2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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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연의 시적인 순간] 내가 가장 먼저 안 '첫눈'](https://static.hankyung.com/img/logo/logo-news-sns.png?v=2020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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