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최대 축제인 핼러윈 시즌에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코스튬 품절 대란이 일었다. K팝을 기반으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인 케데헌은 넷플릭스 역대 최다 시청수 1위를 차지하는 등 신드롬을 일으켰다. 케데헌 열풍의 반사효과는 어마어마했다. 영화에 등장한 김밥 라면 등 K푸드의 매출이 상승했고, 남산타워를 비롯해 주요 배경이 된 관광 명소를 찾는 외국인이 늘어났다. 심지어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무속신앙, 캐릭터를 닮은 뮷즈(뮤지엄 굿즈)까지 인기를 끌었다.
2025년을 관통한 키워드로 케데헌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니, 인기를 넘어 하나의 현상이다. 최근 후속편 계약을 체결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이에 따라 K팝, K푸드, K샤머니즘까지 한국 문화 돌풍 역시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케데헌 성공의 과실은 대부분 투자·배급을 담당한 해외 플랫폼에 돌아가고 한국은 ‘콩고물’만 쳐다볼 수밖에 없는 현실이 조금 씁쓸하다.
콘텐츠산업은 거대 스트리밍 플랫폼으로 대표되는 유통 서비스 제공자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성과를 얻으려면 자본의 투입은 필수고, 이 때문에 소수의 거대 자본이 선택한 일부 프로젝트만 살아남는 구조로 작동한 지 오래다. 글로벌 플랫폼이 빵빵한 제작비를 지원하는 대신 콘텐츠 지식재산권(IP)을 독점함에도, 많은 창작자는 플랫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K콘텐츠가 글로벌 메인스트림으로 떠오르며 문화적·산업적 가치를 증명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글로벌 플랫폼의 쏠림 현상도 심해진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생태계 속에선 케데헌 같은 슈퍼 IP의 탄생 자체가 어렵고, 설사 우리나라가 제2의 케데헌 및 ‘오징어 게임’을 제작한다고 해도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플랫폼이 버는’ 안타까운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악순환을 끊으려면 결국 창작자와 시장을 휘두르는 제작비, 즉 창작자금을 공급하는 방식 역시 새롭게 고민해야 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IP주권펀드 조성을 주장하는 이유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음악 IP를 금융과 융합한 뮤직카우의 문화금융은 하나의 선례가 될 수 있다. 뮤직카우는 폐쇄적이던 음악저작권 시장을 대중에게 개방했다. 대중이 형성한 자본이 문화시장으로 유입돼 창작자에게 IP에 대한 정당한 가치를 제공하고,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양질의 IP가 다시 대중에게 공유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다면 더 이상 그 시장은 소수만이 주무르고 성과를 독차지하는 시장이 아니게 된다.
소수의 거대 자본에서 다수의 대중 자본으로 전환될 때 더 이상 안전한 선택을 반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창작의 다양성을 보존할 길이 열린다. 이처럼 건강한 생태계 조성이 결국은 슈퍼 IP의 탄생과 IP 주권을 확보하는 장기적 방법론이 될 것이다.

2 week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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