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정년 연장 논의의 '빠진 한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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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정년 연장 논의의 '빠진 한 조각'

매주 토요일이면 지역사무실에서 ‘도봉 민원의 날’을 연다. 누구나 와서 편하게 얘기하고 가는 자리다. 얼마 전엔 어린 자녀를 둔 40대 가장이 들러 자연스레 일자리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정년 연장, 우리 같은 사람들한테는 해당도 안 된다”며 “주변을 보면 50세도 못 채우고 그만둔다”고 털어놨다. 그러곤 “그 부담은 결국 우리 애들 세대에 가겠죠. 취업도 안 되는데…”라고 덧붙였다. 짧은 대화였지만 정년 연장 논의의 현주소가 그대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최근 노동계가 임금 삭감 없는 정년 연장을 요구하고, 정치권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호응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정년 연장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청년층이 논의에서 사실상 배제돼 있다. 지난해 청년 세대의 의견 반영 없이 국민연금 개편안을 처리한 상황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한국의 실질 은퇴 연령은 이미 70세를 넘어섰고, 노후 보장 제도는 매우 부족한 편이다. 정년퇴직 이후 국민연금 수급까지 소득 공백 문제도 있다. 문제는 방법이다. 지금은 임금 삭감 없는 정년 연장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정부 소속 상용직이나 대기업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 등 극히 일부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 민간기업의 노동자 상당수는 40대 후반이면 회사를 떠난다. 이들에게 정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제도이며, 정년 연장으로 얻을 이익도 없다. 이익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비용은 노동시장 전체가 떠안는 구도다. 게다가 이 방식대로라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커진다. 기업은 조기 퇴직을 늘리고 신규 채용까지 줄일 것이다. ‘정년 연장=일자리 확대’라는 단순한 등식이 성립할 수 없는 이유다.

정년 연장과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병행해야 한다. 연공 중심의 호봉제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기업이 고령 노동자를 계속 고용하기 어렵다. 이미 일본은 60세 이후에는 재고용 체계로 전환하며 기존 호봉과 직급을 재설계했다. 임금체계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면 고령 근로자의 업무 강도는 낮추고 근속 기간은 늘릴 수 있다. 문제는 이를 가로막는 소수 강경 노조다. 고령자 고용을 어렵게 만든 구조적 원인인 호봉제는 지키려 하면서 정년 연장만을 ‘권리’로 주장한다. 이 과정에서 청년 고용과 노동시장 전체의 지속 가능성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정년 연장이 기득권 보전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반영한 현실적 개편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청년 세대가 논의 구조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 변화의 영향을 가장 오래, 가장 강하게 받는 세대가 빠진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제도는 그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다.

독일은 정년 연장을 추진하면서 임금·직무 개편과 청년 고용 확대 정책을 함께 도입했다. 한국도 모든 세대가 함께하는 노동시장을 만들기 위한 재설계가 필요하다. 이것이 정년 연장 논의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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