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생일[내가 만난 명문장/강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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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구 극작가·연출가 “오늘은 나의 스무 번째 생일인데 참 이상한 건 멀쩡하던 기분이 왜 이런 날만 되면 갑자기 우울해지는 걸까.” ―언니네 이발관 ‘생일기분’ 중 어려서부터 생일이 싫었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닌데, 평소엔 그렇게 관심도 없는 것 같던 사람들이 그날만은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심지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며 호들갑스럽게 나를 껴안았다. 고깔모자를 씌우고 요상한 옷을 입히고는 눈 감고 소원을 빌라고 했다. 비밀이지만 내 소원은 생일을 없애는 거였다. 생일은 완벽한 하루여야 하지만, 생일 이데아는 어김없이 박살 난다. 아빠는 늦잠을 자고, 케이크는 늘 맛이 없고, 놀이동산엔 사람이 많았다. 내 돈으로는 절대 사지 않을 선물만 받았다. 어쩌다 마음에 쏙 드는 선물을 받으면 그것도 싫었다. 억지로 내 취향을 맞춘 것 같아서. 축하를 받아도 싫고 못 받아도 싫다. 싫은데 아무한테도 티를 낼 수 없어서 싫다. 대체 어쩌라는 거냐고? 그러니까 누가 낳아달랬나. 짓궂은 친구들이 부르던 ‘왜 태어났니’ 노래가 차라리 더 편했다. 그러게, 나는 왜 태어났을까. 커서 연극 연출가가 될 줄은 미처 몰랐지만 재능은 있었던 모양이다. 생일 파티가 한 편의 연극이라는 걸 나는 너무 일찍 알아차렸던 것이다.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이 노래가 처음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생일이 연극이라는 걸 알아챈 사람이 나 말고 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던지.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는 사랑스러운 막내 이리나의 영명축일 파티로 ‘세 자매’의 막을 열었다. 모두 모스크바로 가자며 들떠 있지만 관객은 안다. 아무도 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들 앞에는 버텨야 하는 삶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행복해야 하는 삶은 행복할 수 없다. 그러니 생일 우울은 지극히 정상이다. 우리는 아직 축하하기엔 이르다. 강훈구 극작가·연출가©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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