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의 미술시간]〈443〉권력의 진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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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년 프랑스 화가 이아생트 리고가 그린 63세의 ‘루이 14세’(사진)는 영원히 늙지 않을 군주처럼 당당하게 서 있다. 거대한 가발과 화려한 대관식 망토, 세월이 비켜간 듯 매끈하고 우아한 다리. 그 모습은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가 창조해 낸 절대권력, ‘태양왕’ 그 자체였다. 이 초상은 1700년 스페인 왕위에 오른 손자 펠리페 5세에게 선물하기 위해 제작됐다. 그러나 완성본을 본 루이 14세는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어 원본을 자신이 소장하고 복제본을 마드리드로 보내게 했다. 붉은 커튼의 극적인 연출, 힘을 상징하는 흔들리지 않는 대리석 기둥, 기단에 새겨진 정의의 여신과 화려한 왕권의 상징물들. 캔버스 속에 담긴 것은 노년의 왕이 세상에 각인시키고 싶었던 완벽한 자신의 이상향이었다. 정작 그림 밖 현실은 달랐다. 손자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 참전하면서 프랑스 재정은 파탄 직전에 몰렸고, 말년에는 아들과 손자, 증손자들이 잇달아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덮쳤다. 하지만 캔버스 어디에서도 전란의 불안이나 비극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권력의 초상은 사실을 기록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대신에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숨길지 철저히 선택할 뿐이다. 쇠락 대신 청춘을, 불안 대신 확신을, 전쟁의 고통 대신 왕의 위엄을 앞세운다. 완벽한 통치자의 이미지는 바로 그 선택으로 완성된다. 오늘날 궁정화가의 자리는 사진과 영상, 소셜미디어가 대신한다. 시공간은 바뀌었어도 권력이 스스로를 연출하는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권력자의 이미지를 볼 때 주목해야 할 점은 화면 안의 화려함이 아닌, 프레임 밖 현실이다. 권력자가 감추려 한 어둠이야말로 그 시대의 가장 솔직한 초상일 테니까. 권력의 진짜 얼굴은 그들이 끝내 숨기려 한 것들 속에 더 선명히 드러난다.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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