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는 말 그대로 배가 산으로 가는 곳이 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파나마 운하다. 중간에 산맥이 있어 파나마 운하는 해수면보다 26m 높다. 바다 양쪽에 갑문을 설치하고 배가 들어오면 주변 호수의 물을 이용해 배를 띄웠다가 반대편 바다로 나갈 땐 물을 빼 해수면 높이로 맞춘다. 그런데 최근 호수의 물이 말라붙으면서 배를 띄우기가 어려워졌다. ▷물이 마른 건 40년 만에 닥친 최강 수준의 ‘엘니뇨’가 부른 극심한 가뭄 때문이다. 이 지역 핵심 우기인 올해 5∼8월 강수량이 예년보다 34%나 줄었고, 그 결과 호수로 유입되는 물의 양도 평소보다 44% 감소했다. 수압으로 배를 띄워야 하는 구조상 물 부족은 물류 마비로 이어진다. 파나마운하청은 하루 평균 36∼40척이던 통항 선박 수를 최근 32척으로 줄였고, 10월부터는 29.5척으로 감축할 계획이다. ▷뱃길은 좁아졌는데 중동 전쟁으로 대체 항로를 찾는 수요가 폭발하면서 대기 시간이 길어졌다. 이러다 보니 줄을 서지 않고 운하를 통과할 수 있는 우선통항권의 경매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한 척 통과에 약 14만 달러(약 1억9000만 원) 수준이던 급행 통항권 가격은 최근 대형 선박의 경우 평균 230만 달러(약 30억9000만 원)로 16배가량 폭등했다. 최근 한국 SK가스의 액화석유가스(LPG) 선박은 사상 최고가인 570만 달러(약 72억2000만 원)의 ‘급행료’를 내기도 했다. ▷파나마 운하의 마비는 한국 산업계에도 직격탄이다. 북미에서 수입하는 원유와 가스, 미국 동부로 향하는 컨테이너 수출 화물이 모두 파나마 운하를 거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이 수입한 석유가스 제품 중 북미산 비중은 23%에 이르고 특히 LPG의 경우 의존도가 90%를 넘는다.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지 못해 먼 길을 돌아가거나 비싼 급행료를 내게 되면 국내 에너지 수급 자체가 흔들리고 가격이 요동칠 수밖에 없다. 파나마에 비가 내리지 않는 기상 이변이 지구 반대편 한국의 생활물가와 수출 기업의 숨통을 조이는 무서운 나비효과로 돌아오고 있다. ▷미국-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고 최근엔 홍해 우회로까지 위협받는 ‘이중 병목’이 현실화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후변화발 가뭄 리스크가 2, 3년 주기로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는 이제 단순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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