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예나]현실과 동떨어진 고교학점제… 이제라도 개선책 마련 서둘러야

1 week ago 4

최예나 정책사회부 기자

최예나 정책사회부 기자
70.0% vs 4.6%.

주체가 다른 두 조사에서 ‘고교학점제의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가 학생에게 도움이 됐느냐’는 같은 질문에 교사들이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이다. 70.0%는 교육부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이고, 4.6%는 교원 3단체(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사노조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가 실시한 조사 결과다. 선택과목의 다양성과 만족도에 대한 질문에도 교육부 설문조사에서는 65.0%, 교원 3단체 조사에서는 17.5%만 ‘그렇다’고 답했다. 기본적으로는 설문조사 설계가 어떻게 됐는지를 따져 봐야 하겠지만, 올 3월부터 고1에 도입된 고교학점제를 두고 현장에서 인식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보여준다.

교육부는 설문조사 수치만 공개했지만 교원 3단체는 교사들의 서술형 답변도 내놨다. “아직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선택이라는 이름의 짐을 지우는 제도”, “출석만 잘해도 다행인 학생도 있는데 공부까지 하라는 건 학교 다니지 말라는 것”, “등급 눈치 보느라 진로와 무관해도 인기 과목으로만 몰린다” 등 다양한 목소리가 담겼다.

고교학점제 취지는 흠잡을 데 없다. 학교가 정한 시간표가 아니라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학업 계획을 세워 과목을 선택한다. 과목 출석률과 학업 성취율을 모두 충족하면 학점을 취득하는데, 3년간 192학점을 누적해야 졸업할 수 있다. 학점 이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에게는 보충학습도 제공한다.

현실은 다르다. 일단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듣기 어렵다. 학교 규모와 교원 상황에 따라 학교마다 개설되는 과목이 다르기 때문이다. 온라인학교, 공동교육과정 등으로 보완한다고 해도, 학교 간 격차는 사라지지 않는다. 원하는 과목이 개설됐다 하더라도 수강자가 적으면 선택하기 쉽지 않다. 내신이 상대평가라 대학 입시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기존 9등급 상대평가에서 5등급으로 완화해 부담을 덜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반대로 ‘1등급 못 받으면 인(in)서울 어렵다’는 불안감만 커졌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목과 무관한 선택과목을 2, 3학년 때 고를 학생도 많지 않다. 공부 못 한다고 낙인찍힌다는 우려에 보충학습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고역이 됐다. 여건, 준비 상황, 대입제도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교육부가 9월 발표한 개선 대책은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 시수를 줄이고, 학교가 선택과목 개설에 필요한 강사를 채용할 수 있게 예산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봉책이다. 현장은 불만으로 더욱 부글부글한다. 당장 내년 3월 1학년 신입생이 들어오고, 2학년 학생은 본격적으로 선택과목을 들어야 하니 개선책이 시급하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는 지금이라도 현장의 호소에 귀 기울여야 한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기 전에도 현장에서는 “도저히 여건이 안 된다”, “실정에 맞지 않으니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마다 교육부는 “시간이 있다”, “아직 해보지도 않았다”고 했다. 지금은 다르다. 이상과 현실이 다른 정책으로 학생과 교사가 고통받지 않도록 현행 학점 이수 기준과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를 고1의 공통과목에만 적용하는 등 개선책을 빨리 발표해야 한다. 교육당국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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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예나 정책사회부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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