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형의 재계 인사이드] 여전히 안개 속인 車 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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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형의 재계 인사이드] 여전히 안개 속인 車 관세

“신발 끈을 다시 고쳐 매고 뛴다는 마음으로 기술 개발에 힘써야죠.”

엔진 점화 부품을 생산해 현대자동차는 물론 미국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에 납품하는 A사 대표의 표정은 밝았다. 지난 14일 한·미 양국이 ‘조인트 팩트시트’를 통해 25%이던 자동차·부품 관세를 15%로 내려서다. 이 회사는 매년 600억원어치 부품을 미국에 수출한다. 매출의 30%에 이른다. 관세 타결이 늦어졌다면 연간 관세로만 150억원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영업이익(130억원)을 웃도는 만큼 적자 기업으로 전락할 처지였다. 15%로 떨어져도 연 90억원의 관세를 내야 하지만 A사 대표는 “일본, 유럽 경쟁사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이니 해볼 만하다”고 했다.

韓 전기차 '마더팩토리'로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 전용 부두. /연합뉴스

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자동차 전용 부두. /연합뉴스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한국 자동차산업을 짓누르던 먹구름이 걷혔다. 작년 생산유발액 321조원으로 국내 수출 1위 품목인 자동차산업은 지난 4월(자동차)과 5월(차 부품)부터 이어진 미국의 25% 관세 여파로 시련을 겪었다. 현대차그룹이 올해 3분기까지 떠안은 관세만 4조6000억원에 달한다. 100대 상장 자동차 부품사의 2분기 영업이익은 전년보다 10% 넘게 줄었다.

관세 협상 타결까지 한·미 양국은 23차례 장관급 회담과 수십 차례 실무 협의를 벌였다. 3500억달러 대미 투자펀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정부는 연간 투자 한도를 200억달러로 한정하고, 20년 안에 투자 원금 상환이 어려우면 수익 배분 비율을 재조정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받아냈다. “국익을 지켜낸 협상”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관세 불확실성이 해소되자 자동차업계 맏형인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125조2000억원을 국내에 쏟아붓는 투자 보따리로 화답했다. 기아는 팩트시트 발표 직후 경기 화성 ‘이보(EVO) 플랜트’에 연 15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전기자동차 공장 착공식을 열었다. 같은 날 준공한 연 10만 대 공장과 합치면 25만 대 규모 전기차 공장을 국내에 들여놓기로 한 것이다. 현대차도 전기차(연 20만 대)와 수소연료전지(연 3만 기) 등 미래모빌리티 신공장을 울산에 짓고 있다.

일각에서 제기한 ‘미국 투자 확대에 따른 국내 제조업 공동화 우려’를 없앤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국내 공장을 제품 개발·제조의 핵심인 ‘마더팩토리’로 만들기로 한 만큼 향후 해외에 공장을 추가로 짓더라도 제조 허브로서 한국의 위상엔 변화가 없다. 현대차그룹은 여기에 더해 올해 1차 협력사가 부담한 수천억원 규모의 대미 자동차 부품 관세도 전액 보전해주기로 했다.

관세 인하 소급 적용 서둘러야

먹구름이 걷힌 만큼 다시 신발 끈을 조여 매야 할 때지만 우리 자동차업계는 생각지도 못한 복병에 다시 한숨을 쉬고 있다. 팩트시트 국회 비준 여부를 놓고 정치권이 공방을 벌이면서 관세 인하 적용 시점이 또다시 지연될 가능성이 생겨서다. 정부와 여당은 팩트시트가 국가 간 조약이 아니라 양해각서(MOU)로 국회 비준 동의 대상이 아닌 만큼 대미 투자 특별법을 제정해 처리하자고 주장했다. 야당은 대미 투자에 따른 재정적 부담을 이유로 국회의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고 맞섰다.

자동차업계의 속은 타들어 간다. 한·미 양국은 관세 인하 시점을 한국이 대미 투자 특별법을 국회에 제출한 달의 1일로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 대미 투자 특별법이 이달 제출되면 11월 1일부터, 다음달 제출되면 12월 1일부터 인하되는 식이다. 법안 제출이 이달을 넘기면 자동차업계는 3000억원을 추가로 떠안아야 한다. 정치권의 공방이 길어질수록 기업이 피해를 보는 구조다.

자동차산업은 국내총생산(GDP) 기여도 1위다. 무려 14%에 달한다. 고용 측면에서도 1위다. 전체의 7%에 해당하는 150만여 명을 직간접적으로 고용한다. 자동차 생태계가 흔들리면 한국 경제가 온전하게 달릴 수 없는 구조다. 국익을 생각한다면 지금 국회가 논의해야 할 사안은 ‘형식’이 아니라 ‘실질’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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