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후의 재계인사이드] 성장 멈춘 한국 가전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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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후의 재계인사이드] 성장 멈춘 한국 가전에 대한 고민

한국의 집은 ‘붕어빵’이다. ‘국민주택형’으로 정한 84㎡를 기준으로, 이보다 크든 작든 비슷한 형태의 아파트에 산다. 국가데이터처가 내놓은 ‘2024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에 있는 주택의 79.6%는 이런 공동주택이다. 한국 주택 구조를 가장 잘 아는 가전기업은 당연히 삼성전자와 LG전자다. 한국의 아파트 건축 트렌드 변화에 발맞춰 여기에 딱 들어맞는 제품을 제때 내놓으니, 해외 기업들이 당할 재간이 없었다.

중국 로봇청소기 ‘로보락’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삼성과 LG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한국에서 로보락은 전체 로봇청소기 시장의 절반을 쓸어 담았다. 한 대에 150만원이 넘는 프리미엄 시장 점유율로는 70%로 더 높아진다. 한 수 아래로 봤던 중국 가전의 ‘한국 침공’이 로봇청소기부터 시작된 것이다.

적자내는 삼성·LG 가전

업계에선 중국의 기술 발전 속도와 가성비를 감안할 때 ‘제2의 로보락’은 다른 가전 분야에서도 속속 나올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중국 가전회사들은 지난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의 메인 무대를 차지할 정도로 기세가 높아졌다. TCL, 하이얼 등이 선보인 제품에 대한 업계의 평가는 한결같았다. 그저 ‘값싼 제품’이 아니라 ‘싸고 좋은 제품’이란 것이다.

[김재후의 재계인사이드] 성장 멈춘 한국 가전에 대한 고민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가전의 침공은 삼성과 LG가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이 됐다.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가 가전(TV 및 생활가전) 부문에서 6000억원 영업손실을 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LG전자도 온전하지 못했다. 가전이 주력인 LG전자는 작년 4분기 1090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중국 가전의 영향력은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14억 내수시장을 뒷배로 둔 덕분에 ‘규모의 경제’를 갖춰서다. 한국보다 인건비도 낮고, 관련 생태계도 훨씬 풍성하게 구축됐으니 가격으론 이미 상대가 안 된다. 기술로 압도하는 수밖에 없지만, 인공지능(AI) 등 핵심 경쟁력 측면에서 중국의 발전 속도는 한국을 압도한다.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비즈니스로 시작한 LG전자가 요즘 기업 간 거래(B2B)로 방향을 튼 이유가 여기에 있다. LG전자는 냉난방공조(HVAC), 상업용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스마트팩토리, 모듈주택, 신소재 등으로 사업의 중심축을 옮기고 있다. LG전자와 달리 반도체, 스마트폰 등 ‘캐시카우’를 갖고 있는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언제까지 적자 사업을 꾸려나갈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지난달 TV와 오디오 사업을 중국 TCL에 매각한 일본 소니가 내린 결단을 삼성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가전이 AI 데이터 플랫폼

하지만 삼성 내부에선 가전을 더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로봇청소기, 세탁기, 냉장고, TV 등 삼성이 만든 가전제품 하나하나가 앞으로 AI 학습 플랫폼이 되기 때문이다. 적자란 이유로 매년 전 세계 가정에 들어가는 수억 대의 AI 학습 플랫폼을 포기하는 건 AI 시대의 ‘금맥’으로 통하는 개인화 데이터를 스스로 내던지는 실수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LG전자도 마찬가지다. LG 가전제품이 전 세계 가정에서 매일 빨아들이는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빅테크들이 앞다퉈 ‘러브콜’을 보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삼성과 LG가 가전 사업을 버릴 수 없다면, 제품과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브랜드 파워를 한층 더 끌어올려 중국과 일전을 벌이는 수밖에 없다. AI와 로봇 때문에 일본이 장악했던 글로벌 가전시장을 가성비로 무장한 삼성과 LG가 빼앗던 시절과는 경쟁 구도도 바뀌었다. AI와 로봇으로 생산성을 대폭 끌어올리면 중국의 최대 무기인 가성비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가전시장의 주인공은 여전히 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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