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있을 노벨과학상 시상식, 우울하다. 일본은 올해도 둘, 그래서 누계 27명! 한국은 아직도 0명! 반도체도 스마트폰도 다 잘하는데 노벨과학상 앞에 서면 졸아드는 우리, 왜 못 받는 걸까? 그런데 혹시 이거 의도적으로 안 받는 건 아니겠지?
일본의 노벨상 수상은 1949년 리켄(理硏)에 근무하던 유카와 히데키가 시작이었다. 그가 받은 노벨상이 폐쇄를 진행 중이던 조직 하나를 되살렸다. 리켄은 과학이 부국강병에 핵심이라고 판단한 정부와 대기업의 성금을 모아 ‘1917년’ 설립한 이화학연구소의 애칭이다. 강의에 신경 쓰지 말고 연구에만 집중하라는 뜻인데 설립 32년 차에 최초의 노벨상을 따낸다. 2차 세계대전 중 원자폭탄 개발을 시도했다고 폐쇄가 결정된 연구소를 첫 노벨상이 살려낸 거다.
리켄은 여전히 과학 일본의 최전선에 서 있다. 한국에 유사한 조직이 있다면 기초과학연구원(IBS)인데 그게 ‘2011년’에 만들어졌지? 94년이나 늦은 출발에다 32년을 더하면 2043년? 한숨이 나온다. 일본은 1980년대에 국위 선양을 위해서는 노벨상을 따야 한다며 국가대표 연구원들이 평생 한 분야만 파고들 수 있도록 ‘묻지 마’ 투자를 시작했다. 그 결과가 최근 10여 년째 쏟아지는 노벨상이다. 같은 시기 한국 대통령은 ‘국위 선양에는 역시 금메달이지!’라며 태릉선수촌에 묻지 마 투자를 감행하셨다. ‘그래도 그 양반이 정치는 잘했다’고 말씀한 어떤 대통령은 카르텔을 조성해 성과도 없는 기초연구에 세금 낭비한다며 ‘묻지 마’ 예산 삭감을 시현했다. 이쯤 되면 ‘안 받는’ 쪽이 맞다.
노벨과학상에 근접한 한국인이 한 분 계셨다. 전쟁통에 피란을 다닌다고 학교를 제대로 못 다녀 검정고시를 보고 17세 때 서울대 화공과에 수석 입학한 그분, 20세 때 미국 대학에 편입하고 5년 만에 학사, 석사, 박사를 다 씹어드신 후 미국 물리학계를 휘저으셨다. 가히 천재라 부를 만하다.
한국은 ‘지켜줄 가치’가 있다며 6·25전쟁에 참전한 16개국이 월남전에는 파병을 거절했다. 거긴 지켜줄 가치가 없다고 본 걸까? 그런데도 신세를 갚겠다며 외로이 군대를 파병한 한국이 얼마나 고마웠으면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공대를 하나 지어주겠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공대보다 ‘산업기술연구소’를 지어달라고 부탁했고 1966년 KIST가 탄생했다. 그렇게 연구소는 생겼지만 연구자가 없었다. 결국 해외에 체류 중인 과학자들을 모셔올 수밖에. 당시 교수 연봉의 2~3배 제안! 놀랍겠지만 기존에 해외에서 받던 연봉의 30%, 그런데도 29명이나 돌아왔다.
박 전 대통령 취지에 공감한 그 천재도 귀국 의사를 보냈지만 연구소장은 ‘여기는 산업기술에 초점을 맞출 거니까 한국인 최초 노벨상 후보인 당신은 거기서 연구를 더하라’고 말렸다. 이 천재, MIT의 교수 제의도 거절하고 ‘페르미국립가속기연구소’ 이론부장으로 갔다. 지구 최고 물리학자 인증이자 노벨상 직행 티켓이었다. 지금이야 유럽입자연구소지만 그때는 거기가 입자물리학의 우주 최강이었다. 평소 애국심이 넘치던 이 천재, 박 전 대통령이 유신을 선포하고 독재를 강화하자 격분했다. 매년 귀국해서 물리학교실을 열려고 했던 조국에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 1977년 교통사고로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런 분이 그 대통령과 손잡고 핵 개발을 시도했다고 쓴 소설이 400만 부나 팔렸다는 사실이 참 당혹스럽다. 그 ‘이휘소’의 이론에 기반한 노벨상이 10개도 넘는다.
페르미연구소에 들어가는 천문학적 예산에 기가 막힌 의원이 “이게 국가 안보에 뭘 기여하냐”고 물었다. 연구소장은 “없다. 하지만 미국을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로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대답했고 의회는 압도적 동의로 예산을 통과시켰다. 이거다. 세금이나 축내는 카르텔로 지명해 추락시킨 명예와 자존심이 예산보다 더 큰 문제다. 기술 창업해 벌 수 있는 돈에 비하면 노벨상 상금은 쥐꼬리에 붙은 벼룩이다. 30%로 연봉을 삭감해도 귀국하게 만드는 ‘인정과 존중’ 그리고 ‘지켜야 할 가치’, 그게 핵심이다. 그래서 이휘소 박사님, 어떻게 당신의 조국이 이제는 귀국하실 만한 수준에 도달했을까요?

2 weeks ago
5
![[만물상] 마지막 판매왕](https://www.it.peoplentools.com/site/assets/img/broken.gif)
![[사설] 쿠팡 사태 수습 위해선 김범석 의장이 나서야 한다](https://static.hankyung.com/img/logo/logo-news-sns.png?v=20201130)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