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저성장 시대, 장기 안목의 정책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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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저성장 시대, 장기 안목의 정책 절실하다

대단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기형적인 인구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구 고령화도 문제고 저출생도 그렇다.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 세대 수가 정년퇴임하는 장년 세대보다 훨씬 적다. 앞으로 이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이다. 세금을 낼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들고 공적 재정을 통해 보호받아야 할 사람은 늘어나는 구조다.

이런 현실은 이미 확정적이며 단기간에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모든 분야에서 중장기 정책 기조를 수립할 때 전제 조건이 되고 있다. 세대 간 갈등 같은 사회 문제는 물론 재정, 정년과 고용, 연금과 보험 등 사회복지와 산업 구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응 방법에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세심하게 마련된 정책 기조라면 쉽게 바뀌어서는 안 된다. 의견 수렴이 원활하지 않다면 시간을 두고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최근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극단적인 정책 기조 변화를 겪고 있으며, 더 큰 문제는 이런 중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사안보다 눈앞의 단기적이고 지엽적인 문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사회 구성원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세심하게 마련된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다. 긴 안목으로 결정된 정책 기조는 그 방향성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분야별로 정권과 무관하게 장기적으로 유지돼야 할 정책 기조와 단기적으로 수정·보완할 수 있는 세부 추진 방안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각 분야의 정책 기조마저 흔들리며 많은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 또한 매우 크다.

이는 정책 기조가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립되지 못한 데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에너지와 부동산 정책은 정부가 중장기 에너지기본계획과 국토종합계획을 마련하고 있음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변화 폭이 크다. 그 때문에 원전산업은 부침을 겪고 있고, 국민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믿지 못한다.

1988년 시작된 국민연금 제도는 현재 기금 고갈을 걱정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인구구조 특성상 더 많이 내고 덜 받게 하는 방법 외에 다른 뚜렷한 해법이 없다. 결국 청년 세대와 장년 세대 모두에게 조금씩 양보를 요구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마치 폭탄 돌리기 하듯 그 결정을 뒤로 미루고 그로 인한 부담이 커지고 있다. 사회복지는 확대하기 쉽지만 축소하기는 어렵다. 특히 저출생·고령화로 인구 감소를 겪고 있어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한 분야임에도 정권에 따라 정책 기조가 바뀌는 대표적 분야다.

당연히 우리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국민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낮아졌다. 정부 정책의 극단적인 변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막대한 비용을 초래한다. 첫째, 정부 정책이 정권에 따라 급격히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이며 이에 따라 각 주체가 정책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둘째, 정책 변화에 대한 불확실성은 투자 등 주요 경제적 판단에서 정치적인 변수를 고려하게 만들어 과감하고 선제적인 결정을 어렵게 한다. 결국 정책의 레임덕 현상이 일반 경제주체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심지어 신혼부부가 집을 마련할 때조차 어느 정부가 들어서느냐가 중요한 매수 결정 요인으로 작용하는 상황이다.

각 분야에서 우리가 직면한 상항과 현 정책의 문제점, 그리고 개선 방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곳은 정부 부처라고 할 수 있다. 부처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현장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 집단의 조언을 참고하면서 해당 분야의 중장기 정책 기조를 각 부처가 주도적으로 마련해야 하며, 이렇게 수립된 정책 기조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존중받고 유지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은 행정부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하고, 행정부는 전문성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들이 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믿고, 귀 기울여야 한다. 성장하는 국가는 구성원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공통점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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