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정철의 자본시장 직설] PRS 10조…대기업 '숨은 부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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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철의 자본시장 직설] PRS 10조…대기업 '숨은 부채' 논란

요즘 금융당국과 증권사, 자금 조달이 필요한 대기업 사이에 주가수익스와프(PRS)가 뜨거운 감자다.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되지만 실질적으로는 부채에 가까운 PRS를 어떻게 볼지에 따라 자본시장 흐름과 기업의 자금 조달 전략이 바뀌기 때문이다. 지난 6월 금융위원회가 증권사들에 PRS 회계처리에 관한 의견을 물으면서 관련 논란에 더욱 관심이 쏠리고 있다.

PRS는 대기업의 자사주나 자회사 주식 소유권을 증권사 등 금융권에 넘기는 대신 주식 가치의 상승 및 하락분은 기업에 귀속되는 계약이다. 대부분의 PRS는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업이 주식을 되사오는 조건이 붙어 있고, 해당 기간 주식을 소유한 금융사에 회사채보다 높은 금리의 이자를 제공한다.

PRS는 LG에너지솔루션 상장으로 분할 상장에 비판적 여론이 높아진 2022년 발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재명 정부의 ‘밸류업 정책’으로 유상증자와 자회사 상장이 어려워진 올해 발행 규모가 큰 폭으로 늘어 최근 총 발행잔액이 10조원을 넘어섰다. 한 해 회사채 시장이 100조원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기업들이 10% 이상의 자금을 PRS로 조달하고 있는 셈이다.

신평사 "사실상 차입" 지적

[배정철의 자본시장 직설] PRS 10조…대기업 '숨은 부채' 논란

문제는 PRS가 회계상으로는 자본으로 분류돼 부채에 속하지 않지만 사실상 주식담보대출의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기업과 증권사 모두 일정 기간 이후에는 지분을 되사온다는 전제 아래 PRS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주요 회계업체와 신용평가사들도 이런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실질적인 상환 부담이 있다면 차입거래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는 기업의 재무 건전성 지표를 왜곡하는 효과를 낳는다. PRS를 많이 발행한 기업은 부채비율이 실제보다 낮아 보이기 때문이다. PRS를 부채로 분류하면 SK㈜는 76.6%에서 95.6%, 롯데케미칼은 70.7%에서 92.7%, 이마트는 112.8%에서 141.8%까지 부채비율이 높아진다.

기업들이 증권사와 맺는 PRS 계약 내용을 시장과 투자자에게 충분히 공개하지 않고 있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상당수 증권사는 PRS 계약을 맺으면서 대상 주식은 물론 해당 기업의 공장이나 핵심 특허권을 담보로 잡는다. 기업이 되사오지 않을 경우 주식을 떠안아야 할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깜깜이 계약' 해소해야

하지만 개인투자자는 기업이 PRS 계약을 체결할 때 관련 세부 계약 내용은 물론 구체적인 PRS 계약 규모와 금리도 상세히 알 수 없다. 나이스신용평가 등이 보고서를 통해 “현행 공시 체계에서 PRS의 세부 약정 내용 등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다”고 비판하는 부분이다.

금융위 의견 청취를 기점으로 PRS를 부채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으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부 기업은 PRS 계약서에 ‘추후 자본이 아니라 부채로 인식될 경우 조기상환하겠다’는 조항을 포함하는 등 단서 조항이 늘었다”고 귀띔했다.

물론 PRS가 수행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많다. 기업이 보유한 핵심 자산이나 지분을 매각하지 않고도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으면서 일반 회사채 투자보다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증권사로서도 이득이다. 이미 10조원 이상이 PRS로 조달된 상황에서 뒤늦게 부채로 분류하면 혼란이 커질 수 있다.

다만 시장과 투자자에게 PRS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PRS의 규모와 금리, 계약 조건, 담보 여부 등을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 해당 내용들은 개별 기업이 PRS로 실제로 지게 되는 부담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PRS 팽창이 자본시장 전체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게 할 수 있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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