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한국원자력연구원 사이클로트론응용연구실장최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차세대 암진단용 지르코늄-89(Zr-89)가 중국에 수출됐다는 소식은 우리나라 핵의학 분야에서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Zr-89는 약물 위치를 실시간 영상으로 추적할 수 있는 방사성동위원소로, 암세포를 정확히 찾아 결합하는 신약 개발에 유용한 물질이다. 주로 대형병원 양전자방출단층촬영장치(PET)에 활용되며 종양 진단과 치료 모니터링, 면역치료제 검증, 바이오소재 평가 등 다양한 의학.바이오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활용성이 높아지고 있다.
방사성동위원소는 원자를 구성하는 중성자와 양성자 개수 차이로 방사선을 방출하는데, 방사선 종류에 따라 암을 치료하거나 암 위치를 찾아낼 수 있는 의학적으로 아주 유용한 물질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수입되는 방사성동위원소는 현지 사정에 따라 공급 불확실성이 높고, 가격 변동이 심해 국내 연구 현장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산 Zr-89가 해외 시장으로 진출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제품 수출을 넘어 우리나라가 방사성동위원소 관련 기술 주권을 확보했다는 선언과도 같다.
이번 Zr-89 수출은 원자력연이 입자가속기의 하나인 사이클로트론을 직접 구축하고, 이를 활용해 방사성동위원소 생산 기술을 개발한 것이 결정적인 원동력이었다. 방사성동위원소는 시간이 지나면 없어지는 고유 특성 때문에 신속하고 안정적인 생산 능력이 핵심이다. 즉, 짧은 시간에 생산·정제·품질보증이 모두 통합된 기술이 필요하다. 과거 외산 장비나 공정에 의존하던 시대와 달리 우리나라는 이제 사이클로트론 구축부터 장비 개발, 고순도 동위원소 정제 기술 및 품질 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독자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국산화 의미를 넘어 우리나라 연구 인프라가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주목해야 할 점은 국산 Zr-89 순도가 99.9%에 달하는 고품질 제품이라는 점이다. 동일 분야 글로벌 제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뿐 아니라, 불순물 제거 기술과 생산 안정성에서 오히려 앞선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방사성동위원소는 미세한 불순물이 진단 영상 정확도와 방사성의약품 품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순도는 무엇보다 중요한 경쟁 지표다. 국내 기술로 만들어 낸 원료물질이 최고 품질을 기록했다는 사실은 기술·품질·신뢰성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준다.
이런 성과는 원자력연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중장기 원자력진흥계획을 마련하고 연구에 투자해 온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한 정부의 정책 지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사이클로트론 자력 구축, 방사선 발생 및 방사성동위원소 생산을 위한 방사선장치 개발 기술, 고순도 화학정제공정 확립 및 자동화 시스템 구축 등은 단기간에 구현할 수 없으며, 국가적 관점의 꾸준한 투자로 완성될 수 있다.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에 이번 성과가 선정된 것도 그 의미를 뒷받침한다.
이제 다음 목표는 명확하다. Zr-89 한 품목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방사성동위원소를 개발할 수 있는 인프라가 거점별로 구축돼 있다. 이번 성공을 디딤돌 삼아, 국내·해외 시장을 동시에 겨냥한 K-동위원소 전략을 본격화해야 한다.
아시아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시장을 확장하려면 지속적인 품질 향상, 국제 인증 확보, 글로벌 파트너십 구축이 병행돼야 한다. 우리나라가 세계 의료용 동위원소 공급망에 참여할 수 있는 핵심 국가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속적 투자와 산업계의 과감한 도전이 필요하다.
박정훈 한국원자력연구원 사이클로트론응용연구실장 parkjh@kaeri.re.kr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

1 week ago
3
![[만물상] 마지막 판매왕](https://www.it.peoplentools.com/site/assets/img/broken.gif)
![[사설] 쿠팡 사태 수습 위해선 김범석 의장이 나서야 한다](https://static.hankyung.com/img/logo/logo-news-sns.png?v=20201130)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