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월세 시대, 새 안전장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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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월세 시대, 새 안전장치 필요하다

최근 한국의 주택 임대차 시장이 빠른 속도로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전·월세 거래 중 월세 비중은 2021년 43.5%에서 2025년 상반기 61.4%로 급증했다. 오랫동안 한국 주거문화를 지탱해온 전세 제도가 사실상 소멸 단계에 접어든 셈이다. 전세 사기와 보증금 미반환 사태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며 제도적 신뢰가 흔들렸고, 1~2인 가구 증가와 대출 규제 강화로 전세 수요가 빠르게 잠식돼서다.

전세는 과거 월세-전세-자가로 이어지는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는 투기의 레버리지 도구가 돼 전세 사기 등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했다. 또 가계부채에 포함되지 않는 그림자 부채로써 금융 안정의 뇌관으로 지적돼 왔다. 따라서 장기적·점진적으로 전세를 축소하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부작용을 막기 위한 정책 대응은 필수다.

표면적으로 전세 축소는 전세대출 감소를 통해 가계부채 총량을 줄이는 긍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임차인은 월세 부담 증가로 가처분소득이 줄고, 여타 금융부채를 연체할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또한 임대인이 보증금 반환을 위해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하는 경우 이른바 ‘임대인 보증금 반환대출’이 새로운 신용 리스크로 등장할 수 있다. 이처럼 전세의 월세화는 전세금이라는 그림자 부채를 공식 부채로 전환하는 과정을 수반하며, 금융 안정 측면에서 또 다른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이 전환기에 어떤 정책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느냐에 따라 금융시스템의 안정성이 크게 달라질 것이다. 앞으로는 총량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가계의 현금흐름과 임대차 시장의 구조적 위험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 지표 개선 이면에 있는 새 위험 요인을 식별해야 한다. 월세화가 진행되는 과도기에 늘어날 수 있는 보증금 반환 목적 대출에 한시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하고 체계적인 임대인 레버리지 모니터링 방안을 마련하는 등 금융 안전을 위한 당국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주택정책과 관련해선 무엇보다 안정적인 공공임대주택 보급이 필수다. 월세가 보편화한 미국은 공공임대주택 공급 대신 민간주택 월세와 서민 가계의 지급 능력 간 격차를 메워주는 주거 바우처를 확대해왔다. 하지만 민간 임대업자가 바우처 상한까지 월세를 올려 받아 전반적으로 주거비가 늘어났고, 바우처가 없는 세입자가 더 큰 주거 부담을 겪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는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금성 지원 말고 집을 제공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오스트리아 빈 모델은 공급 측 지원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시 정부와 공공 성격의 제한영리주택조합 주도로 양질의 대규모 사회주택을 직접 건설해 공급한 결과 민간 임대사업자가 함부로 임대료를 높일 수 없었다.

따라서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공공 주도로 공공임대주택을 대량 공급하려는 정부의 정책은 타당해 보인다. 다만 공공임대주택의 양뿐 아니라 질도 개선해야 한다. 현재의 공공임대주택은 질이 낮고 수요자 선호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계속 제기돼 왔다. 앞으로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는 인구는 기존 월세 가구보다 소득이 높고 가구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되므로, 이들의 수요에 맞는 주택 공급이 긴요하다.

전세의 붕괴를 단순한 퇴행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임대시장으로의 진화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 변화의 방향은 더 투명하고 안정적인 월세 시장을 위한 제도적 설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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