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자립도가 낮은 지역에서 현금성 복지를 한다고 ‘퍼주기’로 단정 지을 순 없다. 서울도 청년수당, 상병수당 등 현금성 복지를 늘려 왔다. 같은 정책인데 재정자립도를 잣대로 달리 평가한다면 서울과 지방의 삶의 질 격차를 좁힐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해도 농어촌 기본소득은 결국 ‘퍼주기’로 끝날 공산이 커 보인다. 이 정책이 성공하려면 대통령이 말했던 것처럼 인구가 늘어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탈을 막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
줄어드는 인구 두고 ‘빼앗기’ 경쟁
총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기본소득과 인구 증가의 인과관계는 분명하지 않다.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였던 2022년, 농어촌 기본소득이 시범적으로 도입됐던 경기 연천군 청산면의 인구는 그 이후에도 줄었다. 설령 이번 시범사업에서 인구가 늘어난다 치자. 월 15만 원을 받으려고 수도권에서 이사를 결심하긴 어렵다. 경기 연천군으로, 강원 정선군으로, 충남 청양군으로 인근 지역에서 이사 온다 한들, 지자체 간 인구를 빼앗고 빼앗기는 ‘제로섬 게임’이 벌어질 뿐이다.지금까지 현금성 복지는 한 번 시작하면 판이 커지고 판돈이 올랐다. 정부는 이번 시범사업을 평가해 2028년부터 모든 인구감소지역 89곳에 농어촌 기본소득 도입을 검토한다. 시(市)지역도 인구가 감소하고 농민도 거주한다. 곧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것이다. 벌써 더불어민주당 농어촌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정부의 추가적인 재정 부담과 시범지역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지역마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인구 유입이라는 정책 효과는 상쇄된다. 전국 리그에서 ‘제로섬 게임’이 펼쳐진다.
농어촌 기본소득은 그 효과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재정 부담은 즉각적이다. 이번 시범사업은 국비와 지방비(광역+기초)가 4 대 6 매칭으로 진행된다. 정부는 내년에 약 1700억 원을 투입하는데 지방정부는 이보다 많은 2800억 원을 투입해야 한다. 지자체의 의무지출이 증가해 정작 필요한 곳에 재정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주민 성화에 시범사업을 신청했지만 재정 마련이 버거웠던 일부 군은 탈락 소식에 내심 안도했다고 한다. 공공건물 공사를 늦추거나 보조금 지급을 보류하는 곳도 있다. 재정 투입 역시 ‘제로섬 게임’이란 얘기다.
총선 직전 본사업… 누가 효과 따질까농어촌 기본소득이 인구감소지역 272만 명 모두에게 지급되면 연간 소요 예산은 5조 원까지 늘어난다. 이번 시범사업에는 69개 군이 앞다퉈 신청했다. B 군수는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농민회 시위, 주민 민원이 이어지니 신청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고 했다. “나야 군만 책임지면 되지만 정부는…”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지방 재정이 휘청일 것”이라며 비판적이었던 국민의힘 도지사도 “원론적 반대”였다며 선정된 군에 도비를 매칭하겠다고 한다. 시범사업에 선정된 군수는 치적 홍보에 나섰고, 탈락한 군수는 지방선거 경쟁 후보의 공격과 주민 항의에 시달린다. 농어촌 기본소득과 중복 지급 논란을 빚고 있는 농어민 수당이 있다. 지자체별로 연간 30만∼80만 원을 준다. 지방선거를 앞둔 2021∼2022년 7개 도 중 5개 도가 ‘우르르’ 지급하며 순식간에 전국으로 확산됐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종료되는 2년 뒤, 공교롭게도 총선을 앞두고 있다. 아마 그때는 누구도 정책적 효과를 따지지 않을 것이다.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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