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훈 칼럼] 李 대통령, 국민통합도 대미 협상처럼 솜씨 발휘하길

3 weeks ago 8

[조일훈 칼럼] 李 대통령, 국민통합도 대미 협상처럼 솜씨 발휘하길

이재명 정부는 천운을 타고났다는 얘기를 가끔 듣는다. 숙적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이라는 헛발질로 모든 것을 망쳐놓은 바람에 기저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경기 침체 국면에서 예기치 않게 찾아온 반도체 특수 덕에 내년 무역수지와 세수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확장 재정에 따른 부담을 한결 덜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환율 안정과 금리 인하 여력도 기대할 수 있다. 경제계가 극구 반대해온 상법 개정안과 노란봉투법(개정 노조법)도 국회 통과를 관철해 지지층에 대한 약속도 어느 정도 이행한 상태다. 그런 여유가 최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고리 2호기 계속운전 허가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운만 따라준 것은 아니다. 대미 관세·안보 협상은 집권 초 이 대통령의 진짜 실력이 드러날 시금석 무대였다. 아쉬움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누가 봐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일본의 대미 협상과 비교해보면 투자 방식과 조건의 유리함이 더욱 돋보인다. 일본은 5500억달러 전액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임기 내에 모두 투입해야 하는 반면 우리는 트럼프 임기 만료 연도인 2029년 1월까지 투자처를 선정하게 돼 있다. 대미 투자 총액 3500억달러 가운데 연간 최대 부담액도 200억달러로 낮췄다. 투자처 결정을 위한 미국과의 사전 협의 조건도 우리 측이 훨씬 낫다. 절대 밀리지 않겠다는 이 대통령의 고집과 배짱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본다. 만약 한·일 양국의 타결 내용이 정반대였다면 난리가 났을 터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최대 고비를 무난하게 넘어서면서 강력한 국정 동력을 확보하게 됐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유사시 핵전력으로도 개발 가능한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처리 권한 확대를 얻어낸 것은 망외의 소득이다. 아예 원자력 싹을 없애려고 달려든 과거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과는 결이 다르다는 점을 확인시켰다. 반핵 단체들의 침묵이 신기할 정도로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풀렸다. 대통령이 내세운 실용과 국익 우선주의가 헛구호가 아니었음을 보여준 대목이다.

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국민 지지율은 두텁고 견고하다. 정치적 안정과 국민 통합을 구현할 여건과 능력이 무르익었다. 그럼에도 그 막강한 힘을 정적 제거와 상대 진영 말살 같은 정치적 투쟁에 밀어 넣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내란 세력 척결’은 권력 교체의 핵심 기폭제였지만 이미 권력을 잡은 마당에는 통합적 에너지로 활용해야 할 정치적 유산에 불과하다.

대다수 국민은 특검기간 연장도, 적폐청산에도 별 관심이 없다. 오히려 여야 간 잦은 정쟁과 수준 낮은 공격적 언사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계엄 세력은 이미 정치적 사망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사법적 단죄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검찰, 법원에 이어 일반 공무원까지 내란 세력을 색출하겠다고 나선 것은 과도하다. 내란방조죄 등으로 기소된 윤 정부 총리와 장관들조차 법적 다툼 여지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이 기각되는 판이다. 일반 공직자들이 느닷없이 벌어진 계엄 사태를 얼마나 알고 동조했겠나. 당시 거대 야당인 민주당 의원들조차 계엄 방송을 보면서 ‘AI발 가짜뉴스’로 여기지 않았나. 대장동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들을 평검사로 강등하겠다는 법무부 발상도 옹졸하다. 한껏 고양된 눈높이로 외치를 성공시킨 지도자의 격에 맞지 않는다.

이 대통령은 대미 협상 과정의 성과와 치적만으로도 지도자로서의 유능함과 집요함을 입증했다. 기업인들도 나라 경제와 산업을 걱정하는 대통령의 진정성에 적잖은 감화를 받았다. 산업 공동화를 막기 위한 국내 투자와 고용 확대, 협력업체와의 상생 발표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한국은 정보 전달과 감응 속도가 빠른 나라여서 지도자와 국민, 정부와 기업이 한마음으로 뛰면 큰 시너지를 일으킨다.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한 것은 맞지만 처음에 이 계획을 입안한 것은 1960년 장면 민주당 정권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 계획을 곧장 실행해 국민과 기업의 저력을 대폭발시켰을 뿐이다. 이 대통령이 그 길을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국민을 단합시키는 대통령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지도자의 반열에 오른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