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연구개발(R&D)은 내 목숨과도 같다.”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주는 2010년대 돈도, 정보도, 경험도 부족한 한국에서 글로벌 신약이 나오려면 초대형 제약사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약산업 최전선인 미국 등에서 일하던 한국인 의과학자들을 만나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고 설득했다.
한미약품이 2015년 기록한 국내 첫 초대형 기술수출 역사는 이렇게 탄생했다. 그해 미국 일라이릴리, 독일 베링거인겔하임, 프랑스 사노피 등과 8조원 규모 계약을 맺었다. 이후 일부 기술이 반환되는 곡절을 겪었지만 후발 기업엔 ‘실패의 자산’이 됐다.
10년이 지났다. 임 창업주의 바통은 후배 기업들이 이어받았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일라이릴리와 3조7000억원 규모 이중항체 신약 기술수출 계약을 맺었다. 올해만 8조원, 누적 10조원에 이르는 성과다. 링거로 맞는 정맥주사를 간단한 피하주사로 바꿔주는 기술을 보유한 알테오젠도 그간 맺은 기술수출 규모만 11조원에 육박한다. ‘유도탄 항암제’로 불리는 항체약물접합체(ADC) 개발기업 리가켐바이오의 누적 기술수출 금액은 10조원을 넘었다. 이들 세 회사가 최근 몇 년 새 체결한 기술수출 규모는 30조원. 지난해 국내 제약·바이오 시장 규모(31조원)와 같은 금액을 해외에서 벌어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혁신 신약을 개발하기 위해선 ‘죽음의 계곡’을 넘어야 한다. 안전성과 효능을 확인하기 위해 평균 14년간 2조원을 투입하는 과정을 견뎌야 한다. 기술밖에 없는 신생 바이오 기업으로선 도저히 엄두를 낼 수 없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기술수출이다. 글로벌 기업에 초기 기술을 수출하면 이들의 신약 개발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다. 임상시험 비용도 지원받는다.
물론 한계도 있다. 기술을 사간 글로벌 빅파마에 기술의 운명을 올곧이 의지해야 한다. 신약 개발 성공률은 10% 남짓. 모든 기술수출이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독자 신약 개발을 위한 자금을 확보할 수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발짝씩 나아가야 한다. 기술수출은 그 소중한 밑거름이다.
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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