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내란 수렁' 빠져드는 공직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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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2025.11.12 17:51 수정2025.11.12 17:51 지면A31

[천자칼럼] '내란 수렁' 빠져드는 공직사회

TV쇼에서 “넌 해고야”로 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공무원들에겐 ‘저승사자’다. 취임 한 달여 만에 연방 공무원의 4%인 10만여 명을 해고하거나 휴직시켰기 때문이다. 정부 효율화를 위해 인력 구조조정에 나선 측면도 있지만 전임 바이든 행정부의 핵심 정책에 종사한 사람들을 제거하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다. 이번 연방정부 셧다운 사태 때도 과거 자신의 정책에 미온적인 정부 조직에 우선적 해고장을 날렸다. 트럼프가 셧다운 종료 조건인 전원 복직을 수용했기에 망정이지 4000여 명이 직장을 잃을 뻔했다.

때론 ‘철밥통’ 비난을 들을 만큼 직업 공무원제가 정착한 한국과는 먼 나라 얘기 같지만, 우리 공직사회라고 정권 교체기에 평지풍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적폐 청산’ 같은 사정의 칼춤이 공직자 줄 세우기에 어김없이 활용된다. 이재명 정부에선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 등장이 예고됐다. 중앙행정부처 49곳에 각각 별도의 TF를 두고 ‘내란’에 가담한 공직자를 찾아내 인사 조치할 방침이라고 한다.

공직사회는 크게 술렁이고 있다. 잘못 걸리면 옷은 벗는 것은 물론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일부 장관처럼 ‘내란방조범’으로 몰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무리한 조사라는 비판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자체가 워낙 느닷없고 돌발적이어서 일반 행정부처 공무원들이 사전에 알았거나 협조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당시는 상황이 워낙 긴박해 계엄선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지금도 내란이냐, 아니냐를 놓고 법적 다툼이 지속되는 상황 아닌가.

민감한 개인 정보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휴대폰 제출 요구도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의심스러운 인사라면 특검의 수사 대상으로 올리는 게 맞다. 집중 점검 기관으로 지목된 군·검찰·경찰 조직에선 벌써부터 ‘친윤 인사’라는 음해성 투서가 접수되고 각종 음모설을 담은 지라시까지 나돈다고 한다. 이 중요한 전환기에 공직사회가 제 역할을 하기는커녕 ‘내란의 수렁’에 점점 더 빠져들어가는 건 아닌지 안타깝다.

김정태 논설위원 inu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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