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가점 70점, 80점 만드는 반칙들[횡설수설/정임수]

1 week ago 3

올 하반기 서울 강남권에서 청약을 진행한 아파트들의 당첨 커트라인은 모두 70점이 넘는다. 15년 넘게 꼬박 무주택으로 버틴 4인 가족도 당첨이 불가능한 점수다. 서울 전체로 넓혀도 당첨 커트라인은 지난해 평균 63점에 달한다. 신혼부부는 물론이고 3인 가구는 청약으로 ‘인 서울’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새 아파트 분양이 갈수록 귀해지는 데다 당첨만 되면 수억, 수십억 원의 시세차익을 보장하는 ‘로또 아파트’가 속출하면서 빚어진 결과다.

▷오랫동안 뽑기 실력이 성패를 갈랐던 아파트 청약 시장은 2007년 가점제가 도입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무주택 기간(32점)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 부양가족 수(35점) 등 세 가지 항목으로 점수를 매겨 합산 점수(총점 84점)가 높은 순으로 당첨자를 가리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무주택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은 각각 15년 이상, 부양가족은 본인을 제외하고 6명 이상이어야 만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청약 점수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아파트 당첨에 실익이 커지면서 온갖 꼼수가 판을 치고 있다. 지난해 ‘20억 로또’로 불리며 청약 경쟁률이 527 대 1까지 치솟았던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아파트는 84점 만점 당첨자가 네 명이나 나와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의 조사 결과 이 중 한 명은 장인, 장모와 함께 사는 것처럼 서류를 조작한 부정 청약이었다. 이 아파트에서만 청약 가점을 높이거나 특별공급 자격을 얻으려고 주소지를 옮긴 위장 전입이 41건이나 적발됐다.

▷국토부는 올 상반기에도 수도권 주요 분양 아파트 40곳을 점검해 252건의 부정 청약 의심 사례를 적발했다. 아내를 처갓집에 위장 전입시킨 뒤 장인과 장모를 부양가족에 포함시켜 당첨된 사례가 들통났다. 무주택 청약 자격을 얻기 위해 창고나 모텔, 상가 등에 허위로 전입신고를 하고선 당첨된 이들도 줄줄이 덜미가 잡혔다. 남편과 위장 이혼을 한 뒤 32번이나 무주택자로 청약해 당첨된 사례도 있었다. 청약 브로커에게 금융인증서와 권리 포기 각서 등을 넘겨주고 당첨된 후 사례금을 챙긴 국가유공자도 적발됐다.

▷부정 청약의 대다수는 부양가족 수를 늘리려는 위장 전입이라고 한다. 부양가족 점수가 무주택이나 통장 가입 기간보다 비중이 훨씬 높은 데다, 가족 한 명당 5점씩이 추가되는 탓이다. 노부모나 성인 자녀의 주소만 옮겨놓으면 가점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만점인 35점을 채우려면 부부가 자녀 셋을 키우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7인 가족이어야 가능하다. 1, 2인 가구가 대세인 시대에 가점제가 반칙의 유혹을 키우고 있다. 무주택 청년과 서민에게 돌아가야 할 새 아파트가 제도의 빈틈을 노린 금수저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현실에 발맞춰 청약 가점제를 손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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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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