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뽑기 실력이 성패를 갈랐던 아파트 청약 시장은 2007년 가점제가 도입되면서 완전히 달라졌다. 무주택 기간(32점)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17점), 부양가족 수(35점) 등 세 가지 항목으로 점수를 매겨 합산 점수(총점 84점)가 높은 순으로 당첨자를 가리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무주택과 청약통장 가입 기간은 각각 15년 이상, 부양가족은 본인을 제외하고 6명 이상이어야 만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청약 점수 인플레이션이 심해지고 아파트 당첨에 실익이 커지면서 온갖 꼼수가 판을 치고 있다. 지난해 ‘20억 로또’로 불리며 청약 경쟁률이 527 대 1까지 치솟았던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한 아파트는 84점 만점 당첨자가 네 명이나 나와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의 조사 결과 이 중 한 명은 장인, 장모와 함께 사는 것처럼 서류를 조작한 부정 청약이었다. 이 아파트에서만 청약 가점을 높이거나 특별공급 자격을 얻으려고 주소지를 옮긴 위장 전입이 41건이나 적발됐다.
▷국토부는 올 상반기에도 수도권 주요 분양 아파트 40곳을 점검해 252건의 부정 청약 의심 사례를 적발했다. 아내를 처갓집에 위장 전입시킨 뒤 장인과 장모를 부양가족에 포함시켜 당첨된 사례가 들통났다. 무주택 청약 자격을 얻기 위해 창고나 모텔, 상가 등에 허위로 전입신고를 하고선 당첨된 이들도 줄줄이 덜미가 잡혔다. 남편과 위장 이혼을 한 뒤 32번이나 무주택자로 청약해 당첨된 사례도 있었다. 청약 브로커에게 금융인증서와 권리 포기 각서 등을 넘겨주고 당첨된 후 사례금을 챙긴 국가유공자도 적발됐다.▷부정 청약의 대다수는 부양가족 수를 늘리려는 위장 전입이라고 한다. 부양가족 점수가 무주택이나 통장 가입 기간보다 비중이 훨씬 높은 데다, 가족 한 명당 5점씩이 추가되는 탓이다. 노부모나 성인 자녀의 주소만 옮겨놓으면 가점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만점인 35점을 채우려면 부부가 자녀 셋을 키우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7인 가족이어야 가능하다. 1, 2인 가구가 대세인 시대에 가점제가 반칙의 유혹을 키우고 있다. 무주택 청년과 서민에게 돌아가야 할 새 아파트가 제도의 빈틈을 노린 금수저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현실에 발맞춰 청약 가점제를 손볼 때가 됐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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