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게임은 게임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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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게임은 게임일 뿐

추석 하루 전, 서울 영등포에 있는 어느 PC방에 갔다. 여야의 젊은 정치인들이 모여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 또래에게 스타크래프트는 게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추억이자 문화다. 티격태격하던 형제들도 스타크래프트 앞에서는 한마음 한뜻이 되었고, 명절에는 사촌들이 PC방에서 하나로 뭉쳤다. 정쟁만 남은 정치판에서 ‘한가위 기념 민속놀이 대회 스타 정치인’ 행사의 취지도 화합에 있었다.

그런데 행사 전에 갑자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각 당의 강성 지지층이 “이 와중에 무슨 게임이나 하느냐” 등의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게임을 게임으로 못 받아들이면 심각한 정치병이다”고 선언하며 행사 참석을 강행했다. 그러나 참석하지 못한 정치인도 있었고, 결국 행사는 ‘반쪽짜리’가 됐다.

정치를 하다 보면 싸우는 게 당연하다. 지역을 대표해서, 진영을 대표해서 국회에 있는 만큼 이해관계가 다른 의원들과의 갈등과 투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명절에 또래 정치인들이 게임으로 소통하는 일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태도는 심각한 문제다. 팬덤 정치의 부작용이 심각한 수준이 된 것이다. 이러면 정치인이 각자의 양심에 따라 독립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강성 지지층의 눈치를 보며, 그들이 정해 놓은 ‘단일대오’ 안에서만 움직이게 된다. 명절에 게임 한판 하기, 상대 진영 인사와 대화하기, 심지어 미소조차 ‘적과의 내통’으로 몰린다.

이런 풍조는 건전한 정치 발전을 가로막는다. 어떤 결정이 국가와 국민 전체에게 타당한지보다 강성 팬덤을 이루는 특정 지지층에 박수받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해져 버린다. 그 결과 정책은 점점 단기적이고 선동적으로 되며, 진영 논리에 맞춰 현실을 왜곡하는 일도 서슴지 않게 된다. 정치인이 군중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국회는 더 이상 숙의와 판단의 공간이 아니라 팬덤의 명령을 실행하는 장소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이는 정치 발전의 가장 큰 적이다. 극단적 목소리가 여론의 전부인 것처럼 과장되며 정치권 내부에서 ‘침묵의 나선’이 강화된다. 목소리를 낮추고 진중하게 정책을 다루려는 시도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치는 목소리 큰 소수의 것이 아니라 조용히 일상에서 살아가는 다수 시민의 삶을 지키는 행위여야 한다.

정치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틀릴 때는 인정하고 필요할 때는 협력하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존중과 소통을 허용하는 정치 문화가 깔려 있어야 한다. 나는 정치가 다시 국민의 일상으로 내려오길 바란다. 명절에 또래 정치인끼리 게임 한 판 하며 웃을 수 있는 나라, 정치를 ‘전쟁’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도구’로 바라보는 나라. 그것이 건강한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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