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원장올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50년, 반세기라는 시간은 단순한 연륜이 아니라, 대한민국 과학기술이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미래를 개척해온 역사 자체다. 그 출발점에는 분명 여러개 상징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1986년 전전자교환기(TDX) 개통이다.
2026년 4월 TDX 개통 40주년을 맞아 우리는 다시 묻는다. 당시 연구자들은 왜 그토록 어렵고, 외로운 길을 선택했는가. 임주환 당시 TDX개발단 책임자는 “창조란 모두가 안된다고 막아서는 실현 불가능함에 과감히 도전하고 맞서는데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한기철 전 이동통신연구소장도 “외국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손으로 교환기를 만들겠다는 선택은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니라 '자립'에 대한 선언이었다고”고 설명했다.
당시 상황을 돌아보면 그 도전이 얼마나 대담했는지 알 수 있다. 1980년대 초 240억원이라는 막대한 연구비가 투입된 TDX 개발은 '단군 이래 최대 프로젝트'로 불렸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세계 10번째로 전전자교환기를 독자 개발한 국가가 됐고, 이는 이후 반도체 산업과 CDMA 이동통신 성공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기반이 됐다. TDX 개발 성공은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강한 확신을 심었고, 대한민국이 기술 주권을 향해 내디딘 첫 걸음이었다.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지금 우리는 TDX 시대보다 훨씬 더 거대한 전환점 위에 서 있다. 바로 인공지능전환(AX)과 6G가 맞물린 디지털 대변혁의 시대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단순한 추격이 아니라 '주도'의 시대라는 점이다. TDX가 통신 자립의 출발점이었다면, 이제 AI는 '디지털 주권'을 결정짓는 새로운 기준이다.
연구원은 TDX 개통 40주년을 기념하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AI 주권 수호 디지털 핸드 프린팅 서약식'을 지난 창립 50주년 기념식에서 진행했다. 과거 TDX를 만들었던 선배 연구자들의 정신을 오늘 연구자들이 이어받겠다는 큰 다짐이었다. 선배들의 손때 묻은 TDX 회로 기판 위로, 이제 후배 연구자들의 디지털 지문이 찍히며 미래 50년을 향한 바통 터치가 이뤄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글로벌 AI 3강(G3)으로 도약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으며, 핵심 인프라가 바로 'AI 고속도로'다. 아무리 뛰어난 AI 기술이 있어도 데이터를 빠르게 전달하고 처리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없다면 그 성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AI 고속도로는 단순 통신망을 넘어, 전국 어디서나 고성능 AI 서비스를 물·전기처럼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지능형 국가 인프라'다.
ETRI는 AI 중심 네트워크 기술로 대한민국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AI 신경망'으로 연결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AI 서비스를 누구나 차별 없이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이는 과거 정보화 시대를 열었던 '정보화 촉진 기본계획'의 진화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돌이켜보면 TDX는 결코 완벽한 환경에서 탄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도전이 대한민국 ICT 산업의 토대를 만들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AI 주권의 길 역시 험난할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조건이 아니라 방향이다. 창립 50주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과거 TDX가 통신 자립의 불씨를 지폈다면, 이제는 AI 고속도로를 통해 AI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 미래는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40년 전 시작된 TDX의 신호는 멈추지 않았다. 그 신호는 이제 AI라는 거대한 물결을 타고 더 멀리, 더 힘차게 확장될 것이다.
백용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부원장 yongb@etri.re.kr

3 hours ago
1
![[한경에세이] 특별함의 패러독스](https://static.hankyung.com/img/logo/logo-news-sns.png?v=20201130)




![[부음] 정병묵(이데일리 산업부 차장)씨 장모상](https://img.etnews.com/2017/img/facebookblank.pn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