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내일은 맑고 춥다”… 전쟁이 낳은 측후소, 서울 날씨 100년을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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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근대 기상 관측소 日, 러일전쟁에 군사용 관측 시작…1907년 경성 첫 관측 연건동에서 낙원동 거쳐 1932년 송월동 시대 중일전쟁 계기 중앙관측소로 승격…광복 뒤에도 송월동서 관측 이어가 2017년 WMO ‘100년 관측소’로 서울기상관측소(옛 경성측후소)는 1907년부터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진은 1913년 서울 종로구 낙원동으로 이전한 경성측후소 전경. 사진 출처 국립중앙도서관·내손안에 서울 염복규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한 신문은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다. “전 경성측후소장 구보다는 8월 15일 이후 기상통계표와 암호전보 그 밖에 중요한 서류가 들어 있는 강철제 서류고를 파괴 소멸”시켰는데 “기상학계의 권위인 이원철 박사가 이 소식을 탐지하고 분노하여 군정 당국의 응원을 얻어 경성측후소를 급습”했다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구보다는 “군에서 소각을 명령해왔음으로 한 일이요, 자기의 의사로 한 일은 아니라고” 변명을 했다고 한다.(자유신문, 1945년 10월 8일)》태평양전쟁 당시 기상 관측과 정보 생산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원철(1896∼1963)은 일제강점기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교수를 지낸 천문학자다. 광복 후 초대 국립중앙관상대장을 맡아 1948년부터 13년간 재임했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기상 관측은 농업과 관련한 강우량 측정이 주를 이뤘다. 이를 상징하는 유물이 세종 때 처음 제작된 측우기다. 그러나 조선은 해양 진출이나 대외 무역이 활발한 나라가 아니어서 종합적인 기상 관측은 발달하지 못했다. 근대적인 기상 관측은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3월 일본군이 목포, 부산, 인천, 용암포(평안북도) 등에 임시 관측소를 설치하면서 시작됐다. 모두 해안 지역이었다. 러일전쟁에서는 해전이 중요했다. 개전 초기 제물포 해전에서 일본군이 크게 승리한 것이 전쟁 전체의 성패를 가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의 근대 기상 관측은 군사적 목적에서 시작돼 일제의 침략 과정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었다. 서울기상관측소(옛 경성측후소)는 1907년부터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진은 1932년 종로구 송월동에 새로 지은 측후소. 원통형 옥탑과 곡선형 현관 등 근대 모더니즘 건축의 특징이 드러난다. 사진 출처 국립중앙도서관·내손안에 서울 러일전쟁이 끝난 뒤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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