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 화가 장 시메옹 샤르댕의 ‘부엌 하녀’(1738년·사진)는 그런 노동의 순간을 포착한다. 그림 속 젊은 여인은 낮은 의자에 앉아 순무를 깎다 잠시 손을 멈췄다. 한 손에는 순무를,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든 채 먼 곳을 응시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바닥에는 채소와 냄비, 정육용 도마가 놓여 있다. 도마 위에 꽂힌 피 묻은 식칼은 평온해 보이는 부엌 풍경 속에 서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는 부엌이 사랑을 실현하는 장소이기 이전에 생명을 다루는 치열한 일터이자 고된 노동이 축적되는 공간임을 암시한다.
샤르댕은 이 작품을 1739년 살롱전에 ‘순무를 깎는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출품했다. 꽤 성공적이었는지 이후 같은 그림을 세 점 더 제작했다. 그는 하녀를 낮은 신분의 노동자로 대상화하는 대신 정갈한 옷차림의 한 인간으로 그렸다. 이는 노동을 천한 것으로 소비하지 않고 일상의 존엄으로 바라보려는 화가의 태도로 읽힌다. 그는 이 작품을 그리기 1년 전 어린 딸을 잃었고, 그보다 앞서 아내와도 사별했다. 상실의 시간을 통과한 화가가 부엌의 노동을 응시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누군가는 늘 그 자리에서 하루를 감당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식탁의 온기는 사실 보이지 않는 시간과 노동의 결과다. 차려진 음식은 기억되지만 준비한 손의 움직임은 쉽게 잊힌다. 샤르댕은 그 잊히는 순간을 붙잡아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노동을 우리는 얼마나 의식하고 있는지.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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